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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상북도

청도군(청도소싸움)

by goldpi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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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서울특별시의 1.2배정도 되며 대구, 부산, 울산, 경남, 경북의 7새 시군과 인접한 영남권의 중심지인 영남알프스의 발원지로 경부선 철도와 대구 - 부산간 고속도로, 국도 20호, 25호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이다. 

또한, 신라삼국통일의 정신이념인 화랑정신과 조국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이며 수려한 자연 경관과 향교, 서원, 유적지등이 많은 문화재 산재의 고장이다.

1. 청도읍성

청도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화양읍 선상지에 축성된 남고북저의 석축성으로 고려 때부터 있었다.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평산성으로 읍성의 평면형태는 방형이고 성벽은 자연석 협축벽이며 북·동·서벽의 중앙에 성문이 구비되어 있었다. 규모는 화안문헌고에 둘레 1,570보(약1,800m)에 벽고는 5자 5촌(약1.65m) 여첩은 600측이라 하였다.
당시의 성곽은 석성과 토성을 혼합해서 쌓은 것으로 화양읍 서상리, 동상리, 교촌리를 둘러싸고 있던 것을 군수 김은휘에 의해 1590년(선조23) 착수하여 1592년(선조25)까지 석축형으로 고치고 성의 높이도 더 높이게 되었는데, 그러나 임진왜란 때 동·서·북문이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었다. 그 후 성벽의 수축과 문루의 재건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의 읍성 철거정책으로 다시 성벽이 헐리고 문루도 제거되었다. 또한 장관청, 아전청, 회계소, 동헌, 객사, 군기고 및 3개의 누각 등이 성 내부에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철거되었다. 그러나 지방관아와 민가가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고, 성곽 기저 부분이 잘 남아있으며 기록도 전해지고 있는 청도읍성은 지방관아 및 읍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유적이다.

 

2. 신화랑풍류마을

“청도신화랑풍류마을”은 화랑정신의 발상지 청도군의 역사적인 의의를 재조명하고 화랑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새로운 천년을 이끌어 갈 시대정신을 널리 보급․확산시키면서 우리의 정신문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세계 속의 신화랑정신 산교육장으로 운영코자 조성하였다.

 세속오계의 화랑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풍류체험(문화예술과 자연을 체험하며 현대인의 정신을 수양하고 치유할 수 있는 멋스럽고 품격 높은 문화관광 활동) 공간으로 조성하고 화랑정신을 교육, 체험, 계승함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교감하는 신개념의 전통문화 관광 클러스터를 구축하였다.

 

3. 청도소싸움미디어체험관

소싸움의 유래에서부터 전해져온 전승된 역사와 현재를 볼 수 있는 '소싸움역사관'에서 소와 소싸움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바우가 청도의 소싸움경기장 문화를 지켜나가고 있음을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4D체험관, 특수영상을 활용하며 소와 체력단련을 해보는 체험장, 유아 놀이관 등 소와 관련된 다양한 시설로 직접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어 인기이다.

이외에도 유아놀이방, 휴게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4. 청도레일바이크

레일을 따라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청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청도레일바이크와 함께 하세요!

레일바이크 뿐만 아니라, 미니기차, 이색자전거, 캠핑장, MTB 자전거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5. 와인터널

온도가 섭씨 13~15도 내외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에는 피서용. 겨울에는 피한용으로 제격입니다. 대한제국 말기인 1898년에 완공된 구 남성현 터널은 천정을 붉은 벽돌로 쌓고, 벽면을 자연석으로 만들어 국내 터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터널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려 108년 전에 완공된 구 남성현 터널은 벽돌 터널로 아주 예쁘고 특이합니다.

 

6. 운문사

운문사는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운문사사적」에 의하면, 557년(진흥왕 18년)에 한 신승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우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이다.
그후 600년(신라 진평왕22년) 원광 국사가 중창하였다. 그는 대작갑사와 가슬갑사에 머물면서 점찰법회를 열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내려줌으로써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되었다. 오갑사가 창건된 시기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여 군비를 정비할 때였다. 이때 오갑사가 운문산 일대에 창건되고 화랑수련장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곧 신라가 서남일대 낙동강 유역으로 국력을 신장해 가는 과정으로써 운문사 일대가 병참기지로서 당시 신라로서는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7. 자계서원

1975년 12월에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선 초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선생을 배향 하기 위해 중종13년(1518년)창건하고 운계서원(雲溪書院)이라 하였고 선조11년 중건하여 현종2년(1661년) 자계서원으로 사액(賜額)되었다. 고종8년(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동 . 서재만 남아 있다가 1924년 참봉 김용희(金容禧)가 중건하였다.
탁영 김일손 선생은 성종17년(148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及第)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연산군4년(燕山君 1498년)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쓴『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화근이 되어 참화(慘禍)당하였다. 이 사건을 무오사화(戊午史禍)라 한다. 중종 반정 후(燕山君12년 1506년) 도승지와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에 추증(追贈) 되었다.
이 서원의 12동 건물중 영귀루와 동서양재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영귀루 옆에는 탁영 김일손 선생께서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와 동쪽으로 탁영선생의 신도비와 절효(節孝) 김선생 정려비(旌閭碑)라 쓴 조부의 비가 있으며, 서쪽에 서원정비(書院庭碑)등이 있는 자계서원은 조선초기 역사와 건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학자와 유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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