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 깊숙히 있으며 대체로 산지가 중심이고 시내가 월악산을 포함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기 때문에 일교차가 매우 심해 봄과 가을에는 아침에는 옷을 많이 껴입어도 춥지만 오후쯤 되면 입던 옷들을 벗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로 기온이 상승한다. 거기다 충주를 관통하는 남한강과 충주호, 탄금호, 호암지 등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인해 안개가 엄청 자주 낀다. 심할 때는 아침에 축구를 하는데 한쪽 골대에서 반대쪽 골대가 안보이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도 안보일 정도이다. 일교차가 큰 기후의 영향으로, 지역 농특산물인 충주사과의 당도가 매우 높다.
1. 수안보온천
수안보는 한국의 온천지로서 물이 솟아나는 곳을 뜻하는 '물안비'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기록들에도 수안보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태조 이성계와 숙종 등 왕족들이 이곳을 찾아 피부병 치료나 휴양을 위해 방문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안보는 온천수의 온도가 53도로 뜨겁고, pH 8.3의 약알칼리성을 가지며, 라듐, 칼슘, 나트륨, 불소, 마그네슘 등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온천수의 투명하고 깨끗한 특성과 생명력이 강해서 한 달 이상 방치되어도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의료 시설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수안보온천의 약효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부병 외에도 신경통, 류머티즘, 위장병, 부인병 등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안보온천은 그 효능과 가치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2. 미륵대원지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317호)는 1976년에 발굴되었고, 10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미륵대원이 깨어난 곳입니다. 이전에는 '미륵댕이'라고 불리는 논밭과 집이 있었습니다. 발굴 과정에서 석물과 석등이 나타났으며, 대원사와 미륵대원의 유기적인 관계가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절터에는 오층석탑, 석등, 석조여래입상 등이 일렬로 서 있습니다. 또한 귀부라는 받침돌과 당간지주도 발견되었습니다. 미륵대원지는 대원사와 관련된 중요한 유적지로, 그 역사와 유물들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3. 탄금공원(세계무술박물관)
충주의 탄금공원은 세계무술박물관, 야외공연장, 연못과 물레방아, 수석공원, 돌미로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원 내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거대한 고목,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어 충주 시민과 여행객들에게 평온한 휴식 공간을 제공합니다. 세계무술박물관은 충주가 택견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며, 택견을 중심으로 한 무술의 역사와 전통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충주의 문화와 무술에 대해 배우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4. 중앙탑사적공원과 충주박물관
충주의 남한강은 계명산을 지나며 'S'자 형태로 굽이치며 충주 시가지를 품고 목계나루를 향해 흐른다. 이 지형은 과거에는 "쇠벼라"라고 불리는 연천(淵遷)이라는 지역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에 금천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가금면이 생겨났다. 충주의 탑평리 칠층석탑은 남한강의 평지에 위치하며, 오랜 세월 동안 중앙탑으로 불리게 되었다. 탑평리 칠층석탑은 신라 원성왕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의 김생과 관련된 전설도 전해진다. 이 지역은 고려와 신라의 격전지로서 중앙의 중요성과 동시에 변방의 슬픔을 상징하는 곳으로 여겨진다.
5. 청룡사지
충주는 늘 당대의 중원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시대가 요동치는 격변의 흔적이 곳곳에 어렸다. 충주의 대표적인 두 절터도 마찬가지다. 하늘재 입구 미륵대원지는 고려 건국을 전후해 태동했다. 태조와 혼인을 맺은 충주 유씨 집안에서 창건했다. 북서쪽에는 청룡사지가 있다. 신하가 왕을 위해 지은 절터가 미륵대원지라면, 청룡사지는 반대로 왕이 신하를 기려 지은 절터다. 청룡사는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전설만 떠돈다. 어느 도승이 소나기를 피하는데,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걸 보았다. 그중 한 마리가 떨어진 여의주를 따라 내려오다 청계산에서 사라졌다. 이에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청룡사를 지었다. 보각국사는 청룡사 옆에 연희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지내다 1392년(태조 1) 청룡사에서 입적했다. 그가 머물던 시기에 청룡사는 보물 700호 《선림보훈》, 보물 720-2호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 등 불교서적을 간행했다. 하지만 조선 말기 그 명당이 화근이 돼 사라졌다. 판서 민대룡이 청룡사 부근에 묏자리를 쓰며 사찰에 불을 질렀다. 이때 사찰 지붕에서 내려온 뱀이 사람들을 죽여 이장했다고 전한다. 지금의 청룡사는 보각국사가 머물던 암자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6. 충주호 둘레길(종댕이길)
마즈막재 주차장에서 충주댐으로 가는 길은 봄날 벚꽃이 장관이다. 충주나루가 있는 건너편으로도 꽃길이 이어진다. 여름이면 초록색 그늘이, 가을에는 고운 단풍이 터널을 이룬다. 10km에 이르는 드라이브 코스로, 충주호의 풍광을 마음에 담고 가는 길이다. 충주댐 물문화관에 가면 댐 정상길(공도교)로 내려가는 전망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충주호를 조망하는 방법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댐 정상길을 걸으면 충주호 물결이 가슴으로 와락 안겨든다.
7. 삼화대장간과 3개시장(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본가)
충주 시내를 관통하고 남한강으로 합수되는 충주천 변에는 재래시장 세 곳이 정겹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 무학시장, 자유시장, 공설시장이 이어져 시장 구경하는 맛이 난다. 사람이 있고 삶이 있는 시장 모퉁이에 전국적으로도 몇 남지 않은 대장간이 눈에 띈다. 쇠를 달구고 두드린 세월이 고스란히 인생이 된 대장장이가 꾸려가는 삼화대장간이다.
삼화대장간에서 나오면 무학시장이 코앞이다. 충주천을 따라 무학시장, 자유시장, 공설시장이 이어진다. 각각 이름이 있지만 한 몸처럼 이어진 세 시장이다. 규모가 작은 충의시장과 끝 자리 5·10일에 서는 충주풍물시장까지 합세하면 무려 다섯개 시장 세트를 만난다. 주전부리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먹거리가 시장 곳곳에서 발길을 붙든다. 그중에도 으뜸가는 명물은 무학시장 순대·만두 골목이다. 손님과 눈길을 마주치며 바쁘게 만두를 빚는 상인들과 나무 걸상이 이어지는 짧은 골목이다. 김치만두와 고기만두, 순대에 도넛까지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시래기를 듬뿍 넣은 순댓국도 인기다.
무학시장 안쪽 골목 끝자락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본가가 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 충주로 이사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활한 옛집이다. ‘반선재’라 이름 붙은 집에는 반 총장이 고등학생 때 입은 교복을 비롯해 공부하던 방과 마당의 우물까지 복원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