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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상북도

성주군(성주참외)

by goldpi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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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은 경북의 서남에 위치하여 지형은 대체로 원형을 이루며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칠곡군, 서쪽으로는 김천시와 경남 거창군 남쪽으로는 고령군 및 경남 합천군, 거창군, 북쪽으로는 김천시와 칠곡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북쪽은 낙동강 과 그 지류 하천이 형성한 평야지대로 양분되어 있고 낙동강 및 대가천 연안의 사질양토가 폭넓게 분포되어 있음

1. 독용산성과 성주호둘레길

독용산성의 둘레는 7.7km(높이2.5m 평균폭넓이1.5m)에 이르며 산성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으로 영남지방에 구축한 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성벽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을 절석(切石)하여 축조하였는데, 막돌흩은층 쌓기를 하였으며 사이사이의 공간에는 잔돌끼움 쌓기를 하여 성벽의 틈새를 메꾸는 형태로 되어 있다. 또한 성벽의 축조방법은 협축법(夾築法)과 편축법(片築法)이 고루 사용되었으며, 계곡을 지나는 성벽의 경우에는 단(段)을 지워 성벽 쌓기를 실시하여 급경사에 따른 성벽의 붕괴를 방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지금은 성문·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무너지고 없어져서 돌무더기와 그 옛터로 짐작되는 건물지만을 확인할 수 있으나 개축할 당시 독용산성은 둘레가 4,581보(步)이고, 여장(女墻)이 2,405첩(堞)에 동옹성(東瓮城), 장대(將臺), 동서남북의 네 포루(砲樓), 동문(東門), 수구문(水溝門), 남소문(南小門)등이 있었고, 합천(陜川), 거창(居昌)의 군병(軍兵)과 군향(軍餉)을 배속하는 등의 규모로 되어 있었다. 또한 이때에 성을 관리하기 위하여 객사(客舍), 동·서창고, 군기고(軍器庫) 등의 건축물이 갖추어 졌으나, 조선 말기에 군사적인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방치되어 성곽과 시설물들이 허물어져 현재는 당시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산행코스 :

금수문화공원 주차장 - 752봉 - 독용산성 암문 - 독용산 정상 - 북문지 - 남문 갈림길 - (임도) - 동문 - 독용산성 주차장 - 임도 내려가다가 중간 샛길 - 독용산 자연휴양림 - 아라월드 입구 - 영모재 - 금수문화공원 주차장(원점회귀)

 

2. 회연서원과 무흘구곡

이 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인조 5년(1627)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선조 16년(1583)에 정구가 회연초당(檜淵草當)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서원의 주향(主享)인 한강 정구는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 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 그는 평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여 부득이 관직에 나올 경우에는 주로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우승지(右承旨), 공조참판(工曹參判),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문목(文穆)의 시호(諡號)가 내려 졌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구(舊)사당, 강당, 동·서재, 신(新)사당, 전사청(典祀廳), 현도루(見道樓) 등이 있으며, 정구가 직접 조성한 서원 앞뜰의 백매원(百梅園)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으며, 그 밖에 한강 정구와 관련된 유물,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 전시관과 향현사(鄕賢祠), 관리사가 있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主享),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를 종향(從享)으로 모시고 향현사에는 신연(新淵) 송사이(宋師頤),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동호(東湖) 이서(李)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

 

3. 성밖숲

성밖에 조성된 숲이라는 단순한 이름 뒤에는 성주의 다양한 역사와 생활사가 담겨진 가치 높은 공간입니다. 밤나무 숲으로 이루어졌던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에 왕버들로 숲을 다시 조성하였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 여름 왕버들과 함께 맥문동이 연출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성주 경산리의 성(城)밖숲은 풍수지리사상에 따라 성주읍성(星州邑城) 밖에 조성한 숲으로 300~500년 생의 왕버들 52그루가 자라고 있다.

 

4. 세종대왕자태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입니다. 태는 태아의 생명력으로 여겨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었습니다. 왕실에서는 전국의 명당에 태 항아리를 안치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성주의 세종대왕자태실은 규모나 가치면에서 으뜸이며 지금은 생명문화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禪石山, 742.4m) 아래의 태봉(胎峰) 정상에 소재하는 세종대왕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적서(嫡庶) 19왕자 중 큰 아들인 문종(文宗)을 제외한 18왕자의 태실과 원손(元孫)인 단종(端宗)의 태실 등 모두 19기가 있으며, 이곳은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되었다.

 

5. 한개마을

600년의 명맥을 이어온 마을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요? 칸칸이 쌓여있는 담장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그 역사와 가치를 간직한 곳이 바로 한개마을입니다. 가옥 하나하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풍수에 따라 구성된 마을 전체를 조망하는 것도 즐거운 체험이 되며, 구불구불 다 이어놓으면 3㎞가 넘는 고샅길 담장은 한개마을을 찾게 되는 또 하나의 기쁨이자 목적이 됩니다.

 

6. 성주역사테마공원(성주읍성)

성주역사테마공원은 성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원으로 성밖숲과 함께 군민들의 휴식처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조선 전기 4대 사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 그리고 조선시대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읍성 북문과 성곽이 성주 역사테마공원의 중심입니다.

 

7. 성산동 고분군

“성주읍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성산(해발 389.2m) 자락을 방문하면 볼 수 있는 신기한 장관이 있습니다. 산줄기를 따라 크고 작은 무덤들이 서로 형제처럼 줄이어 분포하고 있는 곳으로 가야 및 삼국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들입니다. 현재까지 총 129기가 지정되었으며 성주군에서는 지속적으로 정비와 복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성산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1·2·6호분 및「대분(大墳)」·「팔도분(八桃墳)」이 발굴조사 된 바 있으나 조사의 경위나 결과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986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승왜마을 남쪽 능선에 분포하는 대형봉토분 5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지금까지 조사되어 밝혀진 무덤의 내부구조를 보면 매장주체부인 석실(石室)의 구조가 할석으로 축조한 할석식(割石式)과 대형판석을 주로 사용한 판석식(板石式)의 수혈식석실분(竪穴式石室墳)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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